셔츠·드레스·재킷을 해체하고 크기와 위치 다시 조정…기존 자라 의류에 쿠튀르 제작 방식을 적용한 ‘Re{form}’ Vol. 1
[KtN 박인경기자]자라(Zara)와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첫 협업은 이미 존재하는 옷에서 시작했다. 자라의 아카이브 의류를 다시 꺼내 자르고, 줄이고, 이어 붙였다. 셔츠와 드레스, 테일러드 재킷은 원래의 쓰임에서 벗어나 다른 옷의 일부가 되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새 원단으로 처음부터 옷을 만드는 대신 기존 자라 의류를 다시 손보는 방식으로 ‘Re{form}’ Vol. 1을 구성했다.
갈리아노는 완성된 옷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오버사이즈 버튼업 셔츠에는 가죽 코트처럼 보이도록 포일 프린트를 입혔다. 레이스 시프트 드레스는 러플 칼라로 바뀌었고, 테일러드 재킷의 포켓은 기존 위치에서 옮겨졌다. 여러 겹의 드레스는 겉에서 보면 구조적인 코트처럼 읽히도록 다시 조립됐다.
셔츠는 셔츠의 자리를 벗어나고 드레스는 드레스의 형태를 잃는다. 한 벌을 이루던 요소를 떼어 다른 위치에 놓으면서 옷의 쓰임과 비율을 함께 바꾼 것이다. 포켓도 물건을 넣기 위한 기능에 머물지 않고 재킷의 균형을 바꾸는 요소로 이동했다.
자라의 기존 옷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은 이번 협업을 일반적인 디자이너 캡슐 컬렉션과 다르게 만든다. 새 디자인을 자라의 생산 체계에 맞춰 내놓는 방식보다 이미 만들어진 옷을 다시 해체하고 손보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갈리아노는 셔츠와 재킷, 드레스를 완성품으로 보지 않고 다시 나눌 수 있는 옷의 구성 요소로 다뤘다. 소매와 칼라, 포켓과 몸판의 위치를 바꾸고 크기를 조정하면서 기존 의류의 균형을 흔들었다. 한 번 생산이 끝난 옷이 다시 제작의 출발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대량생산 의류와 쿠튀르 제작 방식이 한 옷 안에서 만나는 대목도 여기에서 나온다. 자라는 규격화된 생산과 빠른 상품 전환을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갈리아노는 이런 자라의 옷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절개와 접합, 크기 조정과 재배치를 거쳐 다시 만들었다.
오버사이즈 셔츠에 가죽 코트의 인상을 입힌 포일 프린트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셔츠라는 기본 형태는 남아 있지만 표면이 달라지면서 옷의 인상이 바뀐다. 레이스 드레스가 러플 칼라로 옮겨간 경우에는 변화가 더 크다. 한 벌의 드레스가 다른 옷을 이루는 장식이 되면서 원래의 기능을 완전히 벗어난다.
테일러드 재킷의 포켓을 옮긴 방식도 단순한 장식 변화와 다르다. 재킷에서 포켓은 위치가 익숙한 요소다. 그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몸의 어느 부분이 강조되는지, 재킷의 균형이 어디에서 끊기는지가 달라진다. 갈리아노는 새로운 부품을 더하기보다 이미 있는 요소의 위치를 바꿔 옷의 인상을 흔들었다.
여러 겹의 드레스를 코트처럼 보이도록 구성한 착장에서는 옷의 종류 자체가 흐려진다. 가까이에서는 여러 겹의 드레스가 보이지만 전체 실루엣은 구조적인 아우터에 가까워진다. 드레스와 코트를 나누던 익숙한 경계가 한 벌 안에서 겹친다.
젠더리스로 구성된 점도 이런 변화와 맞물린다. 남성복에서 익숙한 테일러링과 여성복에 자주 사용돼온 비치는 소재, 조인 허리와 드레이프가 성별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 재킷은 허리를 강하게 조이고, 상체를 드러낸 착장과 길게 늘어진 하의도 남성과 여성 모델 모두에게 사용됐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을 없앴다는 설명보다 실제 옷의 배치가 더 직접적이다. 단단한 재킷과 부드러운 천, 몸을 드러내는 부분과 몸을 감싸는 부분이 한 사람 안에서 함께 나타난다. 재킷을 남성성, 드레스를 여성성에 고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복식 요소를 섞어 새로운 인물상을 만들었다.
디자인에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레 앵크루아야블(Les Incroyables)과 레 메르베이외즈(Les Merveilleuses), 전통적인 정원 작업복, 필름 누아르의 분위기도 함께 들어갔다. 큰 모자와 높은 칼라, 조인 허리, 길게 늘어진 천과 검정 테일러링은 서로 다른 시대의 복식을 한 컬렉션 안에서 충돌시킨다.
과거 복식을 그대로 재현한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역사적 요소를 현재의 자라 의류에 옮겨놓고 비율과 소재를 다시 바꾸면서 익숙한 옷을 낯설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이 촬영한 캠페인에서도 옷만 따로 떼어 보여주지 않는다. 크게 부풀린 헤어와 짙은 메이크업, 몸을 비튼 자세가 의상과 함께 들어간다. 모델들은 상품 사진처럼 정면에서 한 벌의 형태를 설명하기보다 서로 기대고 몸을 기울이며 각각 다른 인물을 만든다.
검정 테일러링과 시어 소재, 퍼 장식과 긴 드레이프도 한꺼번에 등장한다. 각 착장의 구조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방식보다 옷과 헤어, 메이크업, 자세를 묶어 하나의 인상을 만드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자라의 아카이브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번 협업을 과거 상품의 재현으로 보기는 어렵다. 갈리아노가 한 일은 자라가 이전에 만들었던 옷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의 일부를 떼고 옮겨 새로운 비율을 만드는 데 있었다.
셔츠는 코트처럼 보이고, 드레스는 러플 칼라가 됐다. 재킷의 포켓은 익숙한 자리를 벗어났고, 여러 겹의 드레스는 아우터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 새 옷을 만들기 위해 기존 옷을 지우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옷 안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Re{form}’ Vol. 1에서 자라의 아카이브는 과거 상품을 보관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존 갈리아노는 셔츠와 드레스, 재킷을 다시 자르고 이어 붙이며 이미 생산된 옷을 다음 디자인의 재료로 돌려놓았다. 첫 협업의 성격도 완성된 옷보다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더 또렷하게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