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장뤼크 고다르 첫 장편…라울 쿠타르의 휴대 촬영·자연광과 거친 편집 결합, 스튜디오 밖으로 나온 누벨바그의 영화 문법
[KtN 최유식기자]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주변에는 실제 행인과 자동차가 지나간다. 장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가 연기한 미셸 푸아카르는 거리를 걷다가 말을 던지고, 진 세버그(Jean Seberg)의 파트리샤 프란키니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며 신문을 판다. 세트와 엑스트라로 통제된 거리가 아니다. 1959년 촬영 당시의 파리가 그대로 두 배우 곁을 흐른다.
1960년 공개된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의 첫 장편 ‘Breathless’(À bout de souffle)는 범죄영화의 줄거리를 갖고 있다. 자동차를 훔친 미셸이 경찰관을 죽인 뒤 파리로 달아나고, 미국인 연인 파트리샤와 함께 로마로 떠날 기회를 찾는다. 경찰의 추적이 가까워지면서 미셸의 시간도 끝을 향한다.
익숙한 범죄영화의 뼈대와 달리 영화를 움직이는 방식은 당시 할리우드와 프랑스 상업영화의 정돈된 문법에서 크게 벗어났다. 사건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대신 중간을 잘라냈고, 삼각대와 조명으로 촬영장을 통제하기보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긴 대화가 느닷없이 이어지고 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건네는 대목도 들어간다.
‘Breathless’를 대표하는 점프컷(jump cut)은 새로운 편집 기법의 발명이라기보다 기존 영화가 감추려고 했던 잘림을 전면으로 끌어낸 선택에 가까웠다.
전통적인 연속편집은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처럼 만드는 데 무게를 둔다. 같은 행동을 연결할 때 배우의 위치와 시선, 움직임의 방향을 맞추면서 편집의 흔적을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다.
고다르는 반대로 잘린 흔적을 숨기지 않았다.
미셸이 자동차를 몰고 파리 거리를 지나가는 부분에서는 같은 방향과 비슷한 구도의 영상 중간이 연속해서 사라진다. 자동차는 계속 달리고 있지만 배경과 몸의 위치가 순간적으로 튄다. 시간 몇 초가 통째로 잘려 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는다.
파트리샤의 얼굴을 따라가는 대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같은 인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변 배경과 자세가 갑자기 바뀐다. 한 번의 자연스러운 대화처럼 이어져야 할 시간이 잘게 끊기면서 대사의 속도와 이미지의 속도가 달라진다. 당시 ‘Sight and Sound’에서도 파트리샤의 얼굴을 유지한 채 중간을 잘라내는 편집이 빠르게 굴러가는 독특한 효과를 만든다고 평가했다.
점프컷 하나만으로 ‘Breathless’를 설명하면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더 큰 변화는 가려진다.
고다르는 스튜디오의 통제된 촬영보다 실제 파리 거리를 택했다.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Raoul Coutard)는 샹젤리제와 카페, 호텔방,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를 따라 배우들을 쫓았다. 삼각대에 고정된 카메라보다 손에 든 카메라가 자주 사용됐고, 촬영지에 이미 존재하는 빛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쿠타르는 사진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사진을 촬영했고 이후 ‘Paris Match’와 ‘Look’ 등에 사진을 제공했다. 정교하게 통제된 스튜디오 촬영보다 실제 공간에서 빠르게 인물을 포착하는 경험을 갖고 영화 촬영으로 넘어왔다. ‘Breathless’의 거칠고 즉각적인 영상은 이후 쿠타르와 고다르의 1960년대 작업을 대표하는 스타일로 이어졌다.
자연광을 사용하려는 선택은 필름부터 바꿨다.
고다르와 쿠타르는 감도가 높은 Ilford HPS 흑백 필름을 사용하려 했다. 원래 스틸사진용 필름이어서 일반적인 영화용 필름처럼 공급되지 않았지만 짧은 롤을 이어 붙여 촬영용으로 만들었다. 현상 방식도 조정해 감도를 높였다. 밝은 스튜디오 조명 없이 실제 실내와 거리의 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었다.
촬영 조건이 달라지자 파리도 배경 이상의 역할을 맡았다.
샹젤리제, 라탱지구, 노트르담 주변, 카페와 영화관이 등장하고 당시 파리를 오가던 행인들이 배우 곁을 스쳐 지나간다. 편집은 과감하게 공간을 잘라내지만 도시의 지리는 의외로 실제 위치와 가깝게 이어진다. 제작비와 촬영 여건의 제약 속에서 실제 거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1959년 파리의 모습이 극영화 안에 남았다.
카메라가 거리로 나오면서 배우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장폴 벨몽도의 미셸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걷고, 카페에 들어가고, 다른 자동차를 훔친다.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험프리 보가트를 흉내 내고 할리우드 범죄영화 속 인물처럼 행동한다.
벨몽도는 ‘Breathless’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작품 공개 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배우로 급부상했다. 기존 스타의 단정한 외모와 연기보다 불규칙한 움직임과 농담, 거친 얼굴과 즉흥적인 태도가 미셸이라는 인물과 맞물렸다.
미셸은 미국영화를 숭배하면서 미국영화의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경찰을 죽이고 자동차를 훔치지만 전문적인 범죄자도 아니다. 거짓말과 농담을 반복하고 계획 없이 움직인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영화 속 갱스터의 행동을 흉내 내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진 세버그의 존재는 다른 방향의 긴장을 만든다.
미국 아이오와 출신 세버그는 오토 프레민저(Otto Preminger)의 ‘Saint Joan’과 ‘Bonjour Tristesse’를 거쳐 프랑스에서 고다르를 만났다. ‘Breathless’에서 짧은 머리와 티셔츠 차림으로 샹젤리제를 걷는 파트리샤는 1950년대 할리우드의 화려하게 제작된 여성 스타 이미지와 다른 인상을 남겼다.
파트리샤는 미셸을 사랑한다고 단정하지도, 곧바로 떠나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호텔방에 오래 머물며 사랑과 죽음, 임신과 미래에 관해 말을 주고받는다. 경찰에게 미셸의 위치를 알리는 마지막 선택까지 행동의 동기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고다르는 범죄 추적을 빠르게 진행해야 할 시점에 긴 대화를 집어넣었다.
미셸과 파트리샤가 호텔방에서 함께 보내는 부분은 영화 전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침대에 눕고, 거울을 보고, 음악을 듣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계속한다. 범죄영화의 진행을 잠시 멈춰 세운 뒤 젊은 남녀의 말과 몸짓을 오래 따라간다.
완성된 각본을 기준으로 모든 행동을 사전에 고정하는 제작 방식에서도 거리를 뒀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가 만든 원안에서 출발했지만 고다르는 촬영 과정에서 대사와 행동을 계속 조정했다. 제작에는 트뤼포와 함께 ‘Cahiers du cinéma’에서 활동했던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이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고다르와 트뤼포, 샤브롤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비평가였다.
세 사람은 프랑스 영화잡지 ‘Cahiers du cinéma’를 중심으로 기존 프랑스 영화의 제작 관습을 비판하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하워드 혹스 등 할리우드 감독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재평가했다. 감독 개인의 시각과 스타일을 영화의 중요한 기준으로 바라보던 비평가들이 1950년대 말 직접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Breathless’의 원안도 트뤼포에게서 나왔다. 트뤼포는 이미 1959년 ‘The 400 Blows’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상태였다. 클로드 샤브롤도 장편을 먼저 연출했다. 고다르는 이들보다 늦게 첫 장편을 내놓았지만 ‘Breathless’를 통해 누벨바그의 급진적인 형식 실험을 전면에 드러냈다.
누벨바그가 ‘Breathless’ 한 편에서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의 ‘La Pointe Courte’가 1955년에 나왔고, 샤브롤의 영화들과 트뤼포의 ‘The 400 Blows’,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Hiroshima mon amour’가 먼저 공개됐다. ‘Breathless’는 이미 진행 중이던 프랑스 영화의 변화를 1960년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 작품에 가까웠다. BFI도 ‘The 400 Blows’와 ‘Hiroshima mon amour’에 이어 등장한 ‘Breathless’를 누벨바그의 흐름을 크게 확장한 작품으로 다룬다.
할리우드에 대한 애정과 기존 영화 문법에 대한 반항도 함께 놓였다.
작품 첫머리에는 미국의 저예산 B영화 제작사 모노그램 픽처스(Monogram Pictures)에 대한 헌사가 나온다. 미셸은 험프리 보가트를 동경하고, 거리와 극장에는 영화 포스터가 등장한다. 고다르는 자신이 좋아했던 미국 범죄영화의 외형을 빌리면서도 바로 그 장르를 안정적으로 전달하던 편집과 촬영 방식은 흔들었다.
관객과 인물 사이의 벽도 여러 차례 깨진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미셸은 갑자기 카메라를 보며 말을 건넨다. 극중 인물이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 전통적인 극영화의 약속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몰래 사건을 지켜보는 관객의 위치를 흔들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음악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마르시알 솔랄(Martial Solal)의 재즈풍 음악은 갑자기 들어왔다가 멈추고, 이미지와 일정한 감정을 계속 유지하기보다 편집의 단절과 함께 움직인다. 거리의 소음과 대사, 음악도 매끄러운 하나의 층보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놓인다.
1960년 3월 프랑스에서 공개된 ‘Breathless’는 고다르의 첫 장편이었다. 같은 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고다르가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받았다.
영화의 영향은 점프컷을 모방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작은 제작진과 실제 거리, 자연광, 휴대하기 쉬운 카메라를 이용해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방식 자체가 이후 젊은 감독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교한 세트와 대규모 장비가 없어도 도시의 현재와 배우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하고, 편집 단계에서 기존 규칙을 적극적으로 흔들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광고와 뮤직비디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서 점프컷이 익숙하게 사용되면서 ‘Breathless’의 편집은 더 이상 낯선 충격으로만 남지 않는다. 현재의 관객에게는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빠른 단절과 직접적인 카메라 응시도 1960년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를 흔드는 선택이었다.
‘Breathless’가 남긴 변화는 규칙을 없앴다는 데 있지 않다. 고다르와 라울 쿠타르는 당시 영화가 당연하게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매끄러운 편집과 안정된 카메라, 통제된 조명을 필요에 따라 버렸다. 거리의 빛이 충분하면 거리에서 찍었고, 시간이 길면 중간을 잘랐으며,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 필요가 있으면 카메라를 바라보게 했다.
1959년 파리를 걷던 벨몽도와 세버그 주변에는 실제 자동차와 행인이 계속 지나간다. 카메라는 완벽하게 정돈된 세계를 만드는 대신 정돈되지 않은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편집은 그 현실을 다시 잘라 속도를 높였다. 1960년 ‘Breathless’가 바꾼 것은 점프컷 하나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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