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월세·수급 사각지대까지 주민 방 안에서 확인…생활 행정으로 옮겨간 국정 운영
[KtN 김 규운기자]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5월 21일 오후 이재명 대통령의 일정은 냉방기기, 월세, 주거급여, 기초생활보장 문제로 이어졌다. 여름철 집중호우와 폭염을 앞두고 이 대통령은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 쪽방상담소 관계자와 주민들을 만났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쪽방촌 주민, 독거노인, 옥외노동자 등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현장 점검과 지원 대책 마련을 지시한 뒤 하루 만에 이뤄진 현장 방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쪽방상담소 관계자들에게 주민 생활 안전과 지원 활동에 감사를 전했다. 철거를 앞두고 비어 있는 공간을 둘러본 뒤에는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을 살피며 냉방기기 설치 현황을 확인했고,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건강 상태와 생활 불편을 물었다.
돈의동 주민들은 대통령의 방문에 직접 반응했다. 주민들은 “이 동네 생기고 대통령이 처음 왔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주민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고, 대통령 저서를 들고 기다리던 주민에게는 이름을 확인한 뒤 직접 서명했다. 골목 끝에서 기다리던 주민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도 응했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이 대통령은 쪽방 안으로 들어가 생활 여건을 살폈다. 한 주민은 에어컨이 없어 여름을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했고, 이 대통령은 관계자들에게 지원 가능한 방안을 확인했다. 좁은 방, 낮은 환기, 낡은 건물, 전기요금 부담이 겹치는 쪽방촌에서 폭염은 단순한 계절 불편이 아니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의 폭염 대응도 이미 생명·안전 의제로 이동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에서 폭염 취약사업장 1000곳 불시 감독, 온열질환 발생 현장 대응, 폭염안전 기본수칙 정착, 극단적 고온에 따른 작업중지 권고 강화를 내세웠다. 기상청의 폭염중대경보 신설에 맞춰 노동 현장의 중지·이동·확인 기준도 강화됐다. 옥외노동자와 쪽방촌 주민은 서로 다른 정책 대상이지만, 폭염 앞에서는 같은 안전망 안에 놓인다.
돈의동 방문에서는 월세 문제도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한 주민의 방에서 고유가 지원금 수령 여부를 확인한 뒤 월세 수준을 살폈다. 주민이 월세가 30만원 정도라고 답하자 금액이 높은 수준이라는 취지로 반응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주거급여 수준으로 임대료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급여가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인 동시에, 열악한 민간임대 현장에서 임대료의 기준선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현실이 함께 드러났다.
2026년 주거급여는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48% 이하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국토교통부 고시 기준으로 서울 1인 가구의 기준임대료는 월 36만9000원이다. 돈의동 현장에서 나온 월세 30만원은 제도상 지원상한액 아래에 있지만, 쪽방의 면적과 냉방·환기 상태, 위생 여건, 화재 위험, 공용시설 접근성을 함께 보면 주거 부담을 월세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주거급여가 실제 거주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지원액이 임대료로 흡수되는 구조가 반복되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쪽방촌 주거 문제는 월세 지원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냉방이 가능한 공간, 안전한 전기 설비, 공용 휴게공간, 위생시설, 건강 확인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철거 예정 공간의 휴게공간 활용을 언급한 대목은 주거복지와 폭염 대응을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다룬 장면으로 볼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도 방문 과정에서 다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방에 혼자 있던 할머니와 오래 대화했다. 할머니가 딸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고 설명하자, 부양가족과 수급자 지원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겠다는 취지로 참모진에게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 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급여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주거급여와 교육급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의료급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 있다. 생계급여도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 예외 기준 등이 함께 작동한다.
현장에서 중요한 대목은 법령 조항보다 주민이 알고 있는 제도 정보다. 제도가 바뀌었더라도 주민이 “딸이 있어서 안 된다”고 알고 있다면 복지의 문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소득·재산 기준 때문에 제외됐는지, 상담 과정에서 제도 안내가 정확했는지, 의료급여와 생계급여·주거급여 기준이 뒤섞여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는 법령 바깥에만 생기지 않는다. 상담, 안내, 신청, 심사 과정에서도 주민은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돈의동 방문은 이재명정부의 국정기조와도 맞물린다.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체계에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확립, 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정부,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 내 삶을 돌보는 복지, 누구나 존중받는 일터가 함께 배치돼 있다. 돈의동 일정은 국정과제의 문장을 주민 방 안의 생활 문제로 옮겨 놓은 장면이었다. 냉방기기, 월세, 수급 자격, 공용 휴게공간, 독거노인 돌봄이 모두 국정 운영의 구체적인 점검 항목으로 올라왔다.
정치문화의 변화는 의전보다 행정의 위치 변화에서 읽힌다. 대통령이 주민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과거 정치에서도 반복돼 왔다. 돈의동 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주민을 배경으로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 생활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린 점이다. 에어컨 없는 방, 30만원 월세, 수급에서 빠진 독거노인, 철거 예정 공간의 활용 가능성이 모두 행정의 점검 대상이 됐다.
이재명식 정치문화는 현장을 찾는 이미지보다 현장에서 행정의 빈틈을 확인하는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민주권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읽힌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말은 선거 때만 작동하는 원리가 아니다. 주민이 겪는 불편이 대통령 일정 안으로 들어오고, 대통령의 확인이 부처와 지방정부의 조치로 이어질 때 국민주권은 생활 행정의 절차가 된다.
사회 흐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폭염은 기상청 예보와 재난문자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다. 고령 1인 가구, 쪽방 거주민, 옥외노동자, 저소득층에게 폭염은 주거·복지·노동·의료가 겹치는 위험이다. 정부 대응도 냉방용품 전달, 안부 확인, 사업장 감독, 기초생활보장 안내, 주거급여 점검, 공용공간 확보를 함께 묶어야 한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확인된 사안은 네 갈래로 이어진다. 냉방기기 지원은 설치 여부만이 아니라 전기요금, 노후 배선, 고장 수리, 야간 이용 가능 공간까지 포함해야 한다. 주거급여는 임대료 흡수 구조와 거주환경 개선 효과를 함께 봐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현장 안내와 급여별 적용 차이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독거 고령 주민에게는 폭염기 건강 확인과 돌봄망 연결이 필요하다.
대통령 차량이 떠나는 길목에서 주민들은 “대통령님 화이팅”,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이 대통령은 “어머님들이 건강하셔야 한다”고 답했다. 돈의동 골목에는 다가오는 여름 전까지 줄여야 할 생활의 빈틈이 남았다. 냉방, 주거비, 수급 자격, 돌봄망을 어느 속도로 보완하느냐에 따라 돈의동 방문은 일회성 민생 행보를 넘어 이재명정부의 생활 행정 전환으로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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