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오브제와 흑백 파동, 공공 로비와 티 블렌딩이 만든 전시 형식의 변화
[KtN 박준식기자]동대문구 아르코(DDM ARCO) 로비에 놓인 흰 가벽, 검은 오브제, 흑백 파동 이미지, 차 도구는 한 전시 안에서 서로 다른 감각의 경로를 만들었다. 2026년 6월 2일부터 7월 28일까지 이어지는 ‘ADVERSUM’은 작품을 벽에 걸고 바라보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관람객이 멈추고, 손에 들고, 마시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전시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임하나 작가의 검은 사물은 관람객 앞에 먼저 놓인다. 새장과 깃털, 비어 있는 의자와 검은 천, 가지 형태의 오브제는 갇힘과 이탈, 부재와 생장의 감각을 바깥에 세운다. 사물들은 큰 규모로 압도하지 않지만, 익숙한 쓰임에서 조금씩 벗어나 관람객의 발걸음을 늦춘다. 새장은 경계를 만들고, 의자는 빈자리를 남기며, 깃털은 사라진 움직임의 흔적을 남긴다.
KLOINM의 작업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흑백 파동 이미지는 컵과 원통형 용기의 표면으로 옮겨지고, 차는 손과 입, 향과 맛을 거쳐 몸 안으로 들어간다. 벽면의 이미지는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컵의 표면은 손 가까이에서 감각을 바꾼다. 파동은 눈앞의 선으로 끝나지 않고, 음용의 시간을 거치며 관람객의 내부 감각으로 이어진다.
두 작업은 같은 흑백 안에 놓였지만 역할은 갈린다. 임하나 작가의 흑색은 외부에 세워진 사물의 무게로 다가오고, KLOINM의 흑백 파동은 몸 안에 남는 잔상으로 이동한다. 한쪽은 관람객이 마주 서야 하는 물리적 압력이고, 다른 한쪽은 관람객이 받아들이는 감각의 통로다. ‘ADVERSUM’은 두 방향을 나란히 배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깥의 사물과 내부의 감각을 한 전시 안에서 맞물리게 한다.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는 이런 구성을 가능하게 한 장소다. 로비는 전용 전시실처럼 관람 순서가 고정된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지나가고, 기다리고, 다시 이동한다. ‘ADVERSUM’은 통과의 장소에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를 세워 이동의 속도를 늦췄다.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뿐 아니라 이동 중에 멈춘 사람도 같은 흰 가벽 앞에 서게 된다.
공공 로비의 일상성은 전시의 바깥 조건으로 남지 않았다. 밝은 조명, 대리석 질감의 바닥, 높은 층고, 샹들리에가 있는 실내 환경은 검은 오브제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기다림과 짧은 대화가 자연스러운 로비의 시간은 차 도구와 컵, 티 블렌딩의 감각과도 맞물린다. 전시는 로비의 기능을 지우지 않고, 통과와 체류가 겹치는 조건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최근 전시 현장에서는 관람객의 몸이 전시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이 중요해지고 있다. 벽면의 작품, 바닥의 오브제, 손에 닿는 기물, 향과 맛으로 남는 기억, 이동 경로와 체류 시간이 함께 전시를 구성한다. ‘ADVERSUM’은 감각 요소를 과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검은 사물과 흑백 파동, 차의 경험과 로비의 동선을 역경과 대면이라는 하나의 축 아래 묶었다.
차를 전시 안으로 들인 방식도 이 흐름의 중요한 대목이다. 전시 자료에는 작가가 주제에 따라 직접 블렌딩한 티를 관람객과 나누는 행위가 단순한 미각 체험을 넘어, 작품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의례적 경험으로 제시돼 있다. 곰보배추를 주원료로 한 자연 재료와 전문 F&B 회사 협업 계획도 함께 언급됐다. 다만 의학적 효능이나 치료 효과는 전시 기사에서 단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사로 다룰 수 있는 지점은 차가 관람객의 체류 시간과 감각의 경로를 바꾼 방식이다.
임하나 작가의 작업이 회화의 표면을 설치와 감각 경험으로 넓혀온 흐름, KLOINM이 파동 이미지와 차의 형식을 결합한 방식은 ‘ADVERSUM’에서 한 공간 안에 놓였다. 감각 확장은 작가 소개의 수사가 아니라 전시장 안의 사물, 기물, 동선, 음용 행위로 확인된다. 검은 오브제는 관람객 앞에 서고, 파동 이미지는 컵을 따라 손으로 옮겨지고, 차는 몸 안에 남는다.
‘ADVERSUM’의 형식은 두 갈래로 정리된다. 바깥에서는 사물이 관람객을 멈춰 세우고, 내부에서는 차가 감각을 받아들이게 한다. 보는 행위와 마시는 행위, 멈추는 몸과 받아들이는 몸이 한 전시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 회화, 설치, 오브제, 티 블렌딩은 장르의 나열이 아니라 관람객의 감각을 이동시키는 구조로 묶인다.
공공 공간에서 열린 감각형 전시라는 점도 남는다. 전용 전시실보다 통제가 어려운 로비에서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는 관람의 속도를 만들었다. 오래 머물 것을 강요하지 않고, 짧은 순간에 시선을 붙잡고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작품을 보러 온 사람과 우연히 지나던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전시를 만나는 조건은 지역 문화공간의 활용 방식에도 다른 가능성을 남긴다.
‘ADVERSUM’은 역경을 설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임하나 작가의 검은 사물은 관람객 앞에 서고, KLOINM의 흑백 파동과 차는 관람객 안으로 들어간다.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는 이동의 장소에서 체류의 장소로 바뀐다. 7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 흑백 파동과 티 블렌딩 사이에서 감각형 전시가 다룰 수 있는 형식을 구체적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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