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모딜리아니에서 브리짓 라일리·피터 도이그까지…같은 세잔에서 갈라진 140년의 현대미술
[KtN 임민정기자]1885년께 폴 세잔(Paul Cezanne)이 그린 'Le Baigneur'와 2023년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Bather'가 파리 그랑팔레에서 서로 가까운 위치에 놓였다. 세잔의 인물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고 발끝 일부는 미완성처럼 남았다. 도이그의 인물은 붉은 수영복을 입고 정면 가까이 몸을 세운다. 제작 시기는 130년 넘게 떨어져 있지만 두 작품은 'Cezanne et nous'에서 하나의 관계로 묶였다.
이번 전시는 세잔 작품 69점 옆에 78명 작가의 작품 105점을 배치했다. 피카소(Pablo Picasso), 폴 고갱(Paul Gauguin),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조안 미첼(Joan Mitchell),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도이그까지 시대도 미술적 방향도 다른 작가들이 포함됐다.
78명이 세잔에게서 받아들인 것은 하나의 양식이 아니었다. 형태와 공간을 가져간 작가가 있는가 하면 세잔 특유의 어색함과 미완성성에 주목한 작가도 있다. 정물과 생트빅투아르 산처럼 세잔이 반복해서 다룬 소재를 다시 그린 작가도 있다. 전시는 하나의 세잔이 아니라 후대 작가들의 시선을 통과하면서 계속 달라진 여러 세잔을 보여준다.
세잔의 'Le Baigneur'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인체 표현과의 거리다. 발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붓질도 감춰지지 않았다. 비례 역시 고전적인 인체 묘사와 다르다. 19세기 관객에게는 결점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요소를 도이그는 한 세기 뒤 다른 회화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도이그가 세잔에게서 관심을 둔 부분은 완벽하게 정돈된 형태보다 미완성의 선과 불확실한 공간이었다. 세잔의 어색함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 회화 안에서 다시 살려냈다. 후대의 화가가 선배 화가를 계승한다는 말이 동일한 기법을 반복한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점도 두 작품의 병치에서 드러난다.
고갱이 받아들인 세잔은 또 달랐다. 고갱은 세잔의 낯설고 불안정한 성격을 상징주의 쪽으로 확장했다. 빛과 사물을 관찰하는 문제보다 세잔의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형태와 표현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
브리짓 라일리는 세잔을 옵아트(Op Art)와 연결했다. 한 화가의 작품에서 출발한 구조적 탐구가 수십 년 뒤 전혀 다른 시각예술의 언어로 이동한 셈이다.
라일리의 'Bali'(1983)는 세잔의 정물이나 풍경과 외형적으로 닮지 않았다. 세잔의 사과나 산,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색과 형태가 시각적인 운동을 만든다. 세잔의 영향을 소재의 모방에서 찾지 않고 형태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확장한 선택이다.
'Cezanne et nous'가 세잔과 후대 작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법도 이런 차이를 전제로 한다. 동일한 영향을 일렬로 정리하지 않고 작가별로 서로 다른 접점을 찾아 배치했다. 세잔에게서 고갱이 발견한 것과 라일리가 발견한 것이 다르고, 도이그가 가져간 요소도 다시 달라진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The Young Apprentice'(1919)는 세잔의 'Boy in a Red Waistcoat'(1888~1890)와 마주한다. 모딜리아니는 세잔의 작품을 깊이 존경했고 'Boy in a Red Waistcoat'의 복제 이미지를 가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세잔의 인물화와 모딜리아니의 인물을 나란히 놓으면서 영향은 기록과 설명을 넘어 실제 형태의 비교로 이어진다.
클리퍼드 스틸(Clyfford Still)의 관계는 다시 다르다. 스틸은 세잔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세잔의 작품을 직접 모방했다기보다 연구 대상으로 삼고 회화의 구조를 자신의 작업 안에서 다시 검토했다. 'Cezanne et nous'에는 스틸이 1965년에 제작한 작품도 포함됐다.
피카소와 세잔의 관계는 현대미술사의 가장 익숙한 연결 가운데 하나다. 피카소는 세잔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첫 번째 위대한 스승으로 여겼고 세잔 작품 여섯 점을 소장했다. 형태와 공간을 구성하는 세잔의 방식은 이후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참조점이 됐다.
2026년 전시에서는 피카소가 실제 보유했던 세잔의 'Château Noir'(1905)도 선보였다. 세잔에서 피카소로 이어지는 관계가 미술사적 설명에 머물지 않고 피카소가 직접 소장했던 작품을 통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세잔을 중심으로 한 계보는 한 방향으로만 뻗지 않는다. 입체주의와 추상미술, 옵아트, 전후 회화와 현대 구상회화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세잔과 연결된다. 세잔의 정물화를 따르는 작가가 있는 반면 같은 전통에 반발하면서 세잔을 의식한 작가도 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이런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소재다. 세잔이 평생 반복해서 그렸던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산은 후대 작가에게 그대로 계승되지 않았다.
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는 1927년께 생트빅투아르를 강렬한 붉은 산으로 바꿨다. 자오우키(Zao Wou-Ki)는 2005년 'Homage to Cezanne'에서 녹색 계열로 세잔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크 탠지(Mark Tansey)는 1990년 'Valley of Doubt'에서 산을 문자와 단어가 뒤섞인 이미지로 다시 만들었다.
탠지의 산과 세잔의 산 사이에는 거의 한 세기가 놓여 있다.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는 반복해서 관찰하고 그리는 실제 풍경이었다. 탠지에게 세잔의 산은 이미 미술사의 상징이 된 이미지다. 같은 산을 그렸지만 대상과 작가의 관계부터 달라졌다.
전시는 여기에서 큐레이터의 선택과도 맞닿는다. 세잔에게 영향을 받은 모든 작가를 한 공간에 넣는 일은 불가능하다. 몇몇 대표적인 거장만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78명이라는 폭넓은 작가군을 구성하면서 세잔의 계보를 여러 방향으로 펼쳤다.
전시장에 어떤 작가를 넣고 어떤 작품과 마주 보게 할 것인지는 관객이 세잔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세잔과 도이그를 나란히 놓으면 미완성과 어색한 인체가 강조되고, 세잔과 라일리를 연결하면 형태와 구조가 부각된다. 피카소를 붙이면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공간 해체가 두드러지고, 생트빅투아르를 그린 작품들을 모으면 반복되는 풍경이 20세기와 21세기에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드러난다.
미술관은 이미 정리된 미술사를 벽에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선택과 배치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관계를 강조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연결을 새롭게 전면에 놓는다. 'Cezanne et nous'가 세잔 단독 회고전 대신 78명의 작가를 함께 부른 이유도 세잔의 작품을 현재의 미술 안에서 다시 읽기 위해서다.
1907년 그랑팔레의 대규모 회고전에서는 사망 직후 세잔의 작품 자체가 중심에 있었다. 2026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시는 세잔을 바라본 140여 년의 시선을 함께 전시장에 들였다. 세잔의 작품 69점과 후대 작가의 105점이라는 비율부터 세잔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전시와는 다르다.
'Cezanne et nous'는 2027년 1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세잔이 어떤 화가였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피카소가 본 세잔, 고갱이 본 세잔, 라일리가 본 세잔, 도이그가 본 세잔을 함께 놓는다. 78명의 작가가 한 명의 세잔을 똑같이 계승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대와 작업에 필요한 부분을 선택해 다시 만들었다. 2026년 그랑팔레에 펼쳐진 세잔의 계보는 단일한 가계도가 아니라 140여 년 동안 갈라지고 겹쳐진 현대미술의 여러 흐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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