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콘크리트·빛·안개·피아노로 구축한 미장센, 오디오·비주얼·연기의 결합
강렬한 숏과 장르적 야심 사이 드러난 촬영·편집의 균열…첫 장편이 남긴 다음 가능성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제작진과 출연진이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제작진과 출연진이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숲 깊숙이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고, 통유리 너머로 나무와 사람이 겹친다. 피아노는 실내에만 머물지 않고 숲으로 나가며, 불과 진흙, 안개와 붉은빛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불안을 시각적 질감으로 바꾼다. 킴보킴 감독의 첫 장편 '포르테(FORTE)'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못지않게 어떤 질감으로 보여줄 것인지를 오래 고민한 영화다.

개별 장면의 미적 완성도는 높다. 숲과 콘크리트의 대비, 피아노와 불의 결합, 유리와 반사를 이용한 인물 배치는 장르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음악과 촬영, 배우를 따로 움직이게 하지 않고 하나의 감각 안에 넣으려 한 연출도 선명하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다른 층위가 남는다. 잘 만들어진 숏이 많은 영화와 각각의 숏이 하나의 필연적인 세계를 만드는 영화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포르테'가 거의 도달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완전히 닫지 못한 지점도 그 사이에 있다.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킴보킴 감독은 VIP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포르테'를 첫 연출작이라고 소개하며 장르적 시도를 과감하게 가져갔다고 말했다. 비주얼과 오디오, 배우의 연기를 작품을 구성하는 세 축으로 꼽았고, 영화를 분석하기보다 눈과 귀, 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영화의 성격은 실제로 이 세 요소가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프레데릭 알바레즈의 음악이 감정의 방향을 잡으면 박정민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공간의 질감을 붙잡고, 배우들은 그 안에서 불안과 욕망을 몸으로 드러낸다. 한 요소가 다른 요소의 뒤를 따라가기보다 서로의 강도를 조절하는 구조다.

감독은 촬영 전부터 음악감독과 작업을 시작했고, 촬영 역시 많은 컷을 확보하기보다 장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 알려진 “컷 수의 욕심을 버리고 한 컷이라도 제대로 찍자”는 촬영 원칙도 '포르테'의 미장센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포르테(FORTE). 깊은 숲과 그 안에 자리한 건축물이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만든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포르테(FORTE). 깊은 숲과 그 안에 자리한 건축물이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만든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숲은 '포르테'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짙은 초록과 축축한 공기, 나무 사이로 제한되는 시야는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는다. 반대편에는 직선으로 잘린 콘크리트와 넓은 유리가 있다. 자연과 인공, 개방된 숲과 폐쇄적인 작업실이 나란히 놓이면서 포르테 스튜디오 자체가 낯선 공간으로 변한다.

유리 역시 반복해서 사용된다. 인물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바라보는 사람인지 바라보이는 사람인지 한눈에 정리되지 않는 순간을 만든다. 반사와 투과가 동시에 가능한 재료를 인물 사이에 두면서 영화는 관계의 거리까지 공간으로 옮긴다.

피아노는 그 공간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음악가에게는 창작의 도구지만 연지에게는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누군가의 재능이 평가되고, 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비며, 그 자리를 다시 다른 사람이 차지한다. 검은 피아노는 음악과 경쟁, 욕망을 한곳에 묶는다.

포르테(FORTE). 빛이 제한된 숲은 인물보다 먼저 불안을 형성하며 스튜디오 바깥의 공간까지 공포의 영역으로 넓힌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포르테(FORTE). 빛이 제한된 숲은 인물보다 먼저 불안을 형성하며 스튜디오 바깥의 공간까지 공포의 영역으로 넓힌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빛의 사용도 적극적이다. 자연광에 가까운 초록빛과 푸른 기운이 이어지다가 붉은빛과 불이 개입하면서 장면의 온도는 크게 달라진다. 색이 단순히 아름다운 구도를 만드는 데 머물지 않고 인물의 상태와 함께 변한다.

안개와 어둠은 정보를 줄인다. 무엇이 등장할지 미리 알려주는 대신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를 제한한다. 공포의 대상을 곧바로 크게 제시하기보다 관객의 시야 자체를 좁히는 방식이다.

'포르테'가 직접적인 충격보다 이미지와 사운드에 상당한 무게를 두었다는 점에서 이런 미장센은 효과적이다. 아름다운 숲과 불길한 사건을 나란히 두면서 아름다움과 공포가 반드시 반대말일 필요는 없다는 연출의 태도도 드러난다.

이렇게 구축한 미적 질서가 영화 전편에서 같은 정밀도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구간에서 갑자기 거칠어지는 영상의 질감과 저화질에 가까운 이미지,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촬영과 급격한 전환은 앞서 세워놓은 시각적 규칙과 충돌한다.

불안한 인물의 상태를 촬영의 불안정성으로 옮기려는 선택이라면 그 질감이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영화 안의 규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포르테'에서는 몇몇 순간 그 연결이 충분하지 않다. 관객이 인물의 불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영상 자체가 왜 갑자기 달라졌는지를 먼저 의식하게 되는 구간이 생긴다.

영화적 의도와 기술적 흔적은 결과 안에서 구별돼야 한다. 의도적으로 거친 장면이라면 앞뒤의 촬영과 충돌하는 이유까지 영화 안에서 설득돼야 하고, 제작 조건에서 비롯된 차이라면 편집과 연출이 그 차이를 작품의 언어로 흡수해야 한다. '포르테'의 몇몇 숏은 그 경계에 머문다.

포르테(FORTE). 진흙에 뒤덮인 인물의 몸과 표정은 영화가 후반부에서 선택한 거칠고 육체적인 공포를 압축한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포르테(FORTE). 진흙에 뒤덮인 인물의 몸과 표정은 영화가 후반부에서 선택한 거칠고 육체적인 공포를 압축한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편집에서도 비슷한 균열이 나타난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설명하지 않고 중간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식은 미스터리에 잘 어울린다. 관객이 보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가 이미 진행됐다는 감각도 남긴다.

인물의 감정까지 같은 방식으로 잘라낼 때는 다른 결과가 생긴다. 연지가 정화를 동경하고, 해준이 죽은 뒤 빈자리를 맡고, 자신의 음악적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며, 이후 더 극단적인 상태로 향하는 큰 흐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몇몇 전환에서 행동의 변화보다 감정의 축적이 짧다.

인물이 왜 다음 행동을 택했는지 충분히 체감하기 전에 결과가 먼저 등장하면 배우의 연기가 비어 있는 시간을 대신 메워야 한다. 앞선 편에서 살펴본 임채영의 강한 후반 연기도 그런 조건 위에 놓여 있다. 강한 표정과 몸의 움직임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만, 드라마가 건너뛴 감정까지 배우 한 사람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순간에는 연출의 계산이 먼저 드러난다.

상징도 풍부하다. 숲은 아름다움과 위험을 함께 품고, 피아노는 예술과 경쟁을 동시에 품는다. 불은 소멸과 절정을, 진흙과 피는 인물이 지나온 육체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상징이 가장 잘 작동할 때는 관객이 그것을 해석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느낄 때다. '포르테'의 좋은 장면에서는 숲과 피아노, 소리와 인물이 한꺼번에 작동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상징의 배치가 지나치게 또렷한 순간에는 인물의 감정보다 감독이 무엇을 의미하려 했는지가 먼저 보인다.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도록 배치될수록 우연과 생동감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도록 배치될수록 우연과 생동감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사진=영화 '포르테'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치밀하게 계산된 미장센이 때로는 역설을 만든다.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도록 배치될수록 우연과 생동감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관객이 장면 안으로 들어가기보다 장면의 설계를 먼저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포르테'의 미적 성취는 이 경계에서 가장 흥미롭다.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 아름다움이 인물에게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지, 감독이 정교하게 준비한 구도 안으로 인물을 데려가는지는 장면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지막의 광란에 가까운 연주는 이런 성취와 한계를 한꺼번에 드러낸다. 배우의 몸은 극단까지 올라가고 음악과 색, 공간도 최고 강도를 향한다. 제목이 말하는 ‘포르테’를 연출적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순간이다.

장면의 세기는 충분하다. 배우의 에너지도 크다. 미술과 촬영 역시 강하다. 다만 영화의 앞부분에서 쌓아온 음악과 드라마, 인물의 변화가 모두 이 순간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결론으로 만드는 데에는 작은 거리가 남는다.

강렬한 장면과 강력한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다.

하나의 장면은 놀라운 구도와 연기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작품 전체가 오래 남기 위해서는 그 장면이 다른 곳에 놓일 수 없다는 필연성이 필요하다. 앞선 장면이 없었다면 마지막 장면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감각이 생길 때 개별적인 아름다움은 하나의 영화적 세계로 바뀐다.

'포르테'에는 그 세계에 필요한 재료가 거의 모두 있다. 시각적 취향이 분명하고 음악을 다루는 감각도 있으며 배우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힘도 있다. 숲과 콘크리트, 빛과 안개, 피아노와 불을 하나의 장르 안에 묶는 능력도 보여줬다.

영화제에서 작품의 촬영과 사운드가 먼저 언급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첫 장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장면을 만드는 능력은 분명하다.

수상작의 자리를 결정짓는 마지막 차이는 아름다운 장면의 수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응집력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포르테'는 개별적인 성취를 충분히 보여주지만 음악과 드라마, 연기와 촬영, 편집의 모든 강세가 단 하나의 결론으로 압축되는 순간에서는 조금의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때문에 영화의 시도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첫 장편에서 감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당 부분 보여줬다는 점이 다음 작품을 궁금하게 만든다. 장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감각 다음에 필요한 것은 장면과 장면 사이를 피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드는 힘이다.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 상영이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포르테' VIP 프리미어 시사회 상영이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포르테'는 훌륭한 영화적 감각을 보여준다. 동시에 훌륭한 감각만으로 위대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남긴다. 음악적 설계, 배우의 연기, 촬영과 미장센은 여러 차례 높은 지점에 도달하지만 그 각각의 최고점을 하나의 필연적인 절정으로 묶는 힘은 끝까지 조금 남겨둔다.

그래서 제목의 ‘포르테’는 마지막까지 의미심장하다. 영화에는 강한 음이 많다. 피아노도, 불도, 배우의 몸도, 숲의 색도 충분히 세다. 부족하게 남는 것은 음량이 아니라 모든 강한 음을 하나의 악장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강세다.

첫 장편에서 이미 자신의 미감을 선명하게 드러낸 킴보킴 감독에게 '포르테'는 완성의 선언보다 방향을 보여준 작품에 가깝다. 좋은 장면을 만드는 감각은 이미 증명됐다. 다음 영화에서 그 장면들이 하나의 거대한 필연성으로 연결되는 순간, 이번 작품에서 비워둔 마지막 ‘포르테’도 비로소 더 크게 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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