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아르코의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 차의 감각으로 풀어낸 ‘마주함’

[ADVERSUM 심층기획①] ADVERSUM, 역경을 정면에 세운 흑백의 전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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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동대문구 아르코(DDM ARCO) 로비에 흰 가벽이 들어섰다. 벽면에는 검은 원형 작품과 직사각형 회화가 걸렸고, 주변에는 새장과 깃털, 의자와 검은 천, 차 도구와 원통형 오브제가 놓였다. 2026년 6월 2일부터 7월 28일까지 이어지는 ‘ADVERSUM’은 흑백의 사물과 감각의 장치를 통해 역경 앞에 서는 경험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라틴어에서 온 ‘ADVERSUM’에는 ‘~을 향해 서 있다’는 뜻이 담겼다. 역경의 어원과도 맞닿은 말이다. 동대문구 아르코에 놓인 작품들은 역경을 지나간 불운이나 개인의 상처로만 다루지 않는다. 눈앞을 막아서는 대상, 피하지 않고 바라봐야 하는 상대, 정면으로 마주한 뒤에야 생기는 긴장이 흰 가벽과 검은 사물 사이에 놓인다.

전시 부제 ‘Res adversae, Marcet sine adversario virtus’에는 세네카의 사유가 깔려 있다. 대적하는 존재가 없으면 인간의 기개와 탁월함도 시든다는 문장이다. 전시장 안의 라틴어 문장은 별도의 해설로만 남지 않는다. 관람객이 검은 오브제 앞에서 멈추고, 맞은편 작품으로 시선을 돌리고,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는 동안 제목에 담긴 정면성이 조금씩 드러난다.

흰 가벽은 작품을 받치는 배경이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가로막는 면으로 놓인다. 검은 원형 작품은 닫힌 세계처럼 벽에 걸리고, 직사각형 회화는 가벽의 흐름을 끊어 세운다. 새장과 깃털, 의자와 검은 천은 벽면보다 낮은 자리에서 시선을 붙잡는다. 전시장에 먼저 남는 것은 색의 조화가 아니라 흑과 백이 마주 선 거리, 그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이다.

[ADVERSUM 심층기획①] ADVERSUM, 역경을 정면에 세운 흑백의 전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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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작가의 검은 오브제는 역경의 감각을 사물의 무게로 끌어낸다. 새장은 안과 밖을 가르고, 깃털은 날개와 잔해의 이미지를 함께 품는다. 의자는 누군가 앉아 있지 않은 자리로 남고, 검은 천은 바닥 가까이에서 무게를 만든다. 가지 형태의 오브제는 얽힘과 생장의 감각을 동시에 끌어낸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물 앞에 선 자신의 위치를 의식하게 된다.

임하나 작가는 회화의 표면을 설치, 음악, 차, 향, 동선으로 넓혀온 작업을 이어왔다. ‘ADVERSUM’에서는 이런 감각의 확장이 흑백의 구조 안에 다시 놓인다. 검은 새장과 깃털, 비어 있는 의자와 천, 가지 형태의 오브제는 장식적 조합으로 묶이지 않는다. 각각 떨어져 놓인 사물들은 관람객 앞에 압력과 부재, 얽힘의 감각을 남긴다.

KLOINM의 차 도구와 컵, 원통형 용기, 흑백 이미지는 다른 방향에서 전시의 감각을 넓힌다.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은 손에 닿는 사물과 마시는 행위로 이어진다. 차는 전시 바깥의 부대 요소가 아니라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로 놓인다. 시각으로 시작된 감상은 향과 맛, 온도와 머무는 시간으로 번져 몸의 내부 감각까지 건드린다.

임하나 작가의 설치와 KLOINM의 차는 같은 흑백 안에서 서로 다른 결을 만든다. 임하나 작가의 오브제는 관람객 앞에 세워진 압력처럼 놓인다. KLOINM의 차와 이미지는 감각을 몸 안으로 들여보낸다. 한쪽은 마주 서야 하는 사물의 무게를 만들고, 다른 한쪽은 내부로 스며드는 감각의 통로를 만든다. 두 방향이 한 공간에서 맞물리며 ‘ADVERSUM’이라는 제목은 더 또렷해진다.

[ADVERSUM 심층기획①] ADVERSUM, 역경을 정면에 세운 흑백의 전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DVERSUM 심층기획①] ADVERSUM, 역경을 정면에 세운 흑백의 전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최근 전시 현장에서는 작품을 벽에 걸고 바라보는 방식만으로 전시를 구성하지 않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관람객의 이동 방향, 머무는 시간, 손에 쥐는 사물, 향과 맛으로 남는 기억까지 전시 안으로 들어온다. ‘ADVERSUM’은 감각 요소를 과하게 펼쳐 보이지 않는다. 역경과 정면성이라는 한 축 아래 흑백의 사물, 차의 경험, 몸의 멈춤을 묶는다.

동대문구 아르코라는 장소는 전시를 현실의 이동 속에 붙잡아 둔다. 관람객은 완전히 분리된 전시장으로 들어가기보다 오가고 기다리는 공간에서 작품을 만난다. 일상의 흐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흐름 위에 흰 가벽과 검은 사물이 세워지고, 이동 중인 몸은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춘다. 제목에 담긴 추상적 의미는 그 순간 실제 감각으로 바뀐다.

‘ADVERSUM’은 역경을 비극적인 언어로 소비하지 않는다. 검은 새장과 깃털, 비어 있는 의자, 차 도구와 원형 작품은 과장된 서사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놓인다. 관람객 앞에 먼저 다가오는 것은 설명보다 시선의 방향과 몸의 멈춤이다.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 차와 이미지, 설치와 동선은 역경 앞에 서는 감각을 전시의 구조로 만든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객은 검은 사물 앞에서 멈추고, 차의 감각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맞은편을 바라본다. ‘ADVERSUM’은 역경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역경을 향해 서는 자세를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 차와 이미지, 이동과 멈춤 사이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