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부터 은평구 BS갤러리…쓰고 찢고 벽에 거는 선택, 관람객 참여로 달라지는 전시장
[KtN 박준식기자]관람객은 밀폐된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남긴다. 기록을 찢어 저울에 달아 버리거나 이름 없이 벽에 건다. 청년지원공동체 소울이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은평구 BS갤러리에서 여는 ‘고해성사展’은 관람객의 기록이 더해질 때마다 내용과 공간이 달라지는 참여형 전시다.
‘고해성사展’은 ‘2026년 제2회 CONNECTED SOUL 展’의 두 번째 섹션으로 마련됐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서울시 청년단체이자 비영리민간단체인 청년지원공동체 소울이 주관한다.
Scahll, 설채원, 이은경, 안지원, 박하, 김형우, SLOOKY, 김종혁, 장지현, 푸름, 정유나, WIN.MERED, 이묵, 황실, 김현지, 박해송, 양세진 등 17명·팀이 참여한다. 작가들의 작품과 관람객의 익명 기록, 심리상담 연계를 한 공간에 배치해 예술 감상과 마음건강 지원을 연결한다.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내용을 기록하고, 작성한 종이를 없애거나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선택까지 직접 한다. 다른 관람객이 남긴 고백을 읽은 뒤 자신의 글이나 그림을 보탤 수도 있다.
벽에 걸린 문장과 그림은 개인적인 기록에서 여러 사람이 마주하는 전시물로 성격이 달라진다. 이름은 드러나지 않지만 기록은 전시장 안에 남는다. 이후 방문한 관람객의 기록이 더해지면서 벽면의 밀도와 전시장의 인상도 달라진다.
종이를 찢어 저울에 올리는 방식은 기록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남겨 둔다. 마음속 이야기를 종이에 옮겼더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직접 폐기하는 방식과 익명으로 게시하는 방식을 함께 마련해 기록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관람객이 선택하도록 했다.
‘고해성사’라는 전시명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밖으로 꺼내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종교 의례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쓰기와 그리기, 폐기와 익명 게시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풀었다. 기록을 남기는 데서 끝내지 않고 이후의 처리 과정까지 관람에 포함한 구성이다.
개막을 앞둔 BS갤러리에서는 작품 제작과 설치가 이어졌다. 흰 벽에는 청색 계열 회화가 걸렸고, 바닥에서는 작업자가 캔버스에 채색을 더했다. 회색 바닥과 거친 질감이 남은 벽면 사이에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을 넓게 뒀다.
전시장 중앙부에도 관람객이 이동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다. 완성된 회화와 관람객이 남길 익명 기록이 함께 놓이는 전시 구조를 고려하면, 작품 감상뿐 아니라 기록 작성과 참여에 필요한 체류 공간이 중요하다.
작업자는 대형 작품을 직접 들어 전시장 안에서 옮겼다. 작품을 벽면에 배치하고 간격을 조정하는 설치 과정과 바닥에서 채색을 이어가는 제작 작업이 같은 공간에서 진행됐다.
개막 전 준비 과정에서는 작품의 크기와 벽면의 폭, 관람객이 이동할 동선이 함께 조정된다. 한쪽 벽에 회화를 몰아넣기보다 작품 사이에 여백을 두면서 개별 작업의 색과 재료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구성했다.
바닥에 놓인 대형 캔버스에는 청색과 녹색이 넓게 번져 있다. 작업자는 붓과 물감을 든 채 캔버스 가장자리에 세부 채색을 더했다. 아래쪽에는 푸른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았고, 녹색과 청색 사이에는 밝은 여백과 작은 색면이 반복된다.
얇게 번진 색과 농도를 높인 붓질이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한다. 굵은 곡선이 캔버스의 좌우로 이어지고, 청색과 녹색 사이에 놓인 자주색과 흰색이 넓은 색면을 나눈다. 제작 과정에서는 물감이 겹치고 형태가 정리되는 흐름이 함께 드러난다.
벽면에 걸린 청색 회화는 짙은 남색과 청록색이 밝은 중앙부를 둘러싼다. 짧고 가는 붓질이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향해 이어지고, 흰색과 옅은 청색이 겹친 곡선형 형체가 중심에 놓였다.
상단과 좌우에는 어두운 색이 밀집하고 중앙으로 갈수록 밝은 청색의 비중이 커진다. 안쪽으로 모이는 붓질과 색의 농도 차이가 평면에 깊이와 움직임을 만든다. 특정한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색채와 붓질의 축적을 앞세운 작품이다.
검은 바탕의 작품에는 흰색 재료가 중앙을 중심으로 두껍게 겹쳐 있다. 원형과 곡선 문양이 촘촘하게 얽혀 있고, 가장자리에는 찢긴 섬유질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여러 방향으로 뻗는다.
흰색 재료가 평평한 검은 바탕 위로 돌출되면서 조명에 따라 작은 그림자를 만든다. 중앙의 정교한 문양과 바깥쪽의 불규칙한 가장자리가 대비하고, 색채보다 재료의 두께와 표면의 질감이 먼저 들어온다.
청색 회화와 흑백 작품은 색과 재료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시선을 중앙으로 모으는 구성은 닮아 있다. 청색 작품은 붓질의 방향과 색의 농도로 중심을 만들고, 흑백 작품은 흰색 재료의 응집과 검은 여백의 대비로 중앙부를 강조한다.
작가들의 작품 사이에 관람객의 익명 기록이 추가되면 전시장은 개막 당시의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는다. 벽에 게시되는 글과 그림의 수가 늘어날수록 관람객이 마주하는 내용과 작품 사이의 관계도 달라진다. 한 달의 전시 기간이 익명 기록을 축적하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해진 체험 도구를 조작하는 방식과도 차이가 있다. ‘고해성사展’에서는 관람객이 자신의 경험을 글이나 그림으로 직접 생산한다. 벽에 남겨진 결과는 다음 관람객이 읽는 전시물이 되고, 감상자와 참여자를 나누던 경계도 낮아진다.
개인의 경험을 직접 적는 만큼 참여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익명으로 게시된 기록은 전시 공간을 채우는 시각적 요소이면서 한 사람이 남긴 사적인 표현이다. 글과 그림을 단순한 장식으로 다루지 않고 각각의 기록으로 보호하는 운영이 필요하다.
청년지원공동체 소울은 상담실 밖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청소년과 청년을 먼저 만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자살 위험이 높은 청소년을 만나고, 1년간 뮤지컬 극단 활동을 통해 회복을 지원한다는 것이 단체가 밝힌 운영 방식이다.
한 차례의 공연이나 단기 프로그램으로 접촉을 끝내지 않고 1년 동안 극단 활동을 지속한다는 점도 소울의 활동을 구분한다. 공연 참여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문화예술 활동을 마음건강 지원과 연결한다.
‘고해성사展’에서도 전시장과 심리상담을 잇는 연계가 이뤄진다. 작품을 감상하고 익명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상담이 필요한 관람객에게 심리상담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마련한다. 예술 활동이 상담을 대신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먼저 꺼낼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상담실 방문을 전제로 참여자를 기다리는 방식과 달리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먼저 만난다는 점도 단체의 방향을 드러낸다. 청소년과 청년을 상담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공연과 전시에 참여하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관계의 출발점을 넓힌다.
작가의 작품, 관람객의 기록, 심리상담 연계를 함께 배치한 구성은 전시 감상 이후의 행동까지 포괄한다. 관람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거나 그리고, 기록을 남길지 없앨지 결정한다. 익명으로 게시된 기록은 다른 관람객의 감상과 참여로 이어진다.
익명 기록을 공개하는 방식에는 세밀한 운영도 뒤따라야 한다.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나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한 표현이 기록에 포함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게시물의 촬영과 외부 공유 범위, 기록 관리 방식, 상담 연계 절차를 현장에서 안내해야 익명 참여의 취지를 유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전시의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기준도 필요하다. 벽에 걸린 글과 그림은 전시장의 배경이 아니라 한 사람이 남긴 개인적인 표현이다. 기록을 읽고 촬영하는 관람객의 행동까지 고려한 운영이 참여형 전시의 신뢰와 연결된다.
‘고해성사展’은 기록을 찢어 버리는 선택과 익명으로 벽에 남기는 선택을 함께 열어 둔다. 작가의 작품만으로 전시를 마무리하지 않고 관람객의 글과 그림을 받아들이며, 전시장 안에서 심리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도 마련한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서울 은평구 연서로14길 17 지층 BS갤러리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관람객이 남긴 익명의 기록이 한 달 동안 벽에 더해지면서 전시장도 개막 당시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