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표지와 금속 잠금, 실 제본과 프랑스어 기록, 삽입 사진과 인물 드로잉까지
그림 몇 장의 묶음이 아니라 구성의 순서와 보존의 이력을 함께 품은 책, 스크랩북은 피카소식 선과 화면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먼저 보여 준다

[KtN 박준식 기자] 금속 잠금장치가 달린 손바닥 크기의 가죽책 한 권에 프랑스어 문장, 인물 드로잉, 삽입 사진, 실 제본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스크랩북을 드로잉 모음이나 소장품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지와 종이, 제본과 필기, 이미지의 배열이 안쪽 그림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이름을 떠올릴 때 대개는 완성된 회화와 조각이 먼저 오르지만, 이 작은 책은 그보다 앞선 자리, 선이 먼저 화면의 축을 세우고 얼굴과 몸이 그 위에서 정리되는 과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드러낸다.

짙은 갈색 가죽은 색이 고르게 남지 않았고, 모서리는 둥글게 닳아 있다. 가운데를 감싼 띠와 금속 잠금장치는 장식보다 보관의 기능을 먼저 드러낸다. 한 번 보고 꽂아 둔 책의 표면이 아니라, 닫고 열고 다시 닫는 과정을 오래 반복한 물건의 표면에 가깝다. 작은 판형도 눈에 남는다. 대형 캔버스처럼 멀리 떨어져 감상하는 형식이 아니라 손에 들고 가까이 붙어 읽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옆단면에서는 종이층의 상태가 먼저 보인다. 장마다 높낮이가 조금씩 다르고, 가장자리는 반듯하게 잘린 면보다 섬유질이 살아 있는 결에 가깝다. 오래 눌리고 휘고 마른 종이가 여러 겹 포개지며 남긴 굴곡도 또렷하다. 정리된 현대 제본물의 단면과는 결이 다르다. 시간과 압력, 습기와 마모를 통과한 종이판이 층을 이룬 모습에 가깝다. 들뜬 단면은 책이 한때의 기록이 아니라 오랜 보존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먼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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