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M·ODM 분업으로 낮아진 창업 문턱…수출 시장은 원천기술·안전성 자료·장수 브랜드를 요구
[KtN 박준식기자] 2023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화장품은 중소기업 수출품목 1위를 지켰다. 정부는 K-뷰티 수출 성과의 배경으로 기획·생산·유통 전문기업의 분업화, 제조 역량, 한류와 결합한 해외 마케팅을 들었다. 아이디어 수준의 제품 기획도 짧은 기간 안에 제품화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K-뷰티의 속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인디 브랜드의 빠른 확산 뒤에는 SNS 화제성만이 아니라, 브랜드 기획을 실제 제품으로 바꾸는 제조 분업이 놓여 있었다.
연간 중소 화장품 브랜드 8,000개사가 수출 시장에 들어오고, 2,500개사가 수출을 중단하며, 3,000개사가 새로 유입된다는 정부 진단도 나왔다. 진입과 퇴출이 동시에 반복되는 시장이다. 창업 문턱은 낮아졌지만, 해외 소비자 앞에서 오래 남는 브랜드가 되기는 더 어려워졌다. K-뷰티 인디 브랜드의 성장세는 빠른 제조망의 힘과 짧아진 제품 수명의 부담을 함께 드러낸다.
온라인몰 판매 데이터와 SNS 후기는 신생 브랜드의 첫 기획 자료가 됐다. 소비자는 성분, 사용감, 향, 패키지를 비교하고, 플랫폼은 판매 추이를 곧바로 보여준다. 브랜드는 반응을 보고 문구와 용량, 가격, 패키지를 조정한다. 원료사와 용기 업체, OEM·ODM 기업은 제형 개발과 생산으로 움직인다. 연구소와 공장, 매장망을 직접 갖춘 기업만 시장에 들어가던 시기와 다른 산업 구조가 만들어졌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김주덕 석좌교수의 산업 분석도 이 대목을 향한다. 인디 브랜드의 민첩성만으로는 K-뷰티의 빠른 확산을 설명하기 어렵다. 국내 OEM·ODM 제조 역량, 제품화 속도, 소비자 반응을 읽는 온라인 유통망이 함께 움직였다. 브랜드 숫자가 늘어난 현상보다 기획과 제조, 유통이 나뉘어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제품 콘셉트와 목표 소비자, 가격대, 사용감이 정해지면 전문 제조사가 제형 개발과 생산을 맡는 방식은 인디 브랜드의 진입 시간을 줄였다. 대규모 연구소와 생산설비를 직접 갖추지 않아도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뒤 후속 제품을 내는 속도도 빨라졌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강한 국내 제조망은 신생 브랜드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었다.
빠른 제품화는 한동안 K-뷰티의 강한 무기였다. 해외 소비자는 새 성분, 새 제형, 새 사용감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한국 브랜드는 판매 데이터와 후기를 따라 제품을 냈다. 시장에 비슷한 성분과 제형, 패키지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소비자가 브랜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질수록 제조 속도보다 브랜드의 설명력과 품질 관리가 더 크게 드러난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제조와 판매가 분리된 국내 화장품산업 구조가 인디 브랜드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보고서에는 낮아진 진입장벽이 브랜드 난립과 경쟁 심화를 부르고, ODM 의존도가 높은 브랜드는 제품 차별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도 담겼다. 뚜렷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 브랜드가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 OEM·ODM 제조사는 K-뷰티의 중요한 산업 자산이다. 제형 개발, 품질관리, 다품종 생산, 납기 대응에서 쌓은 경험은 인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했다. 제조사가 강하다는 사실만으로 브랜드 경쟁력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같은 제조 기반 위에서 비슷한 제품이 많아질수록 브랜드는 자기 언어와 기술 근거를 갖춰야 한다.
김주덕 석좌교수는 기업을 향해 단발성 이슈 중심의 제품 출시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브랜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브랜드 고유의 철학, 핵심 기술, 품질 안정성,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장기 경쟁력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인디 브랜드의 속도가 커질수록 장수 브랜드 전략의 필요도 함께 커진다.
작은 조직은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읽고 의사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다. 반대로 원료 검증, 품질 안정성, 표시광고 근거, 부작용 대응, 정품 유통 관리에서는 취약해질 수 있다. 바이럴로 판매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사후 관리 체계가 늦으면 브랜드 신뢰는 흔들린다. 인디 브랜드 성장의 장점과 부담은 같은 제조 분업 안에 들어 있다.
온라인 유통은 브랜드의 첫 성장을 키웠지만 가격 질서와 정품 관리 문제도 함께 가져왔다. 특정 시장에서 할인 판매가 반복되면 브랜드 이미지는 약해진다. 비공식 판매자와 병행 유통이 늘면 정품 신뢰도 흔들린다. 해외 소비자는 제품력만 보지 않는다. 배송, 반품, 문의 대응, 가격 안정성, 현지 리뷰까지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원료와 제형을 이해하지 못한 브랜드는 제조사 제안서에 기대게 된다. 제품은 빠르게 나올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 오래 기억되기는 어렵다. 같은 성분을 써도 배합, 제형 안정성, 피부 사용감, 임상 근거, 표시 문구에 따라 제품 설득력은 달라진다. 해외 바이어가 성분 자료와 효능 근거를 요구할 때 브랜드 내부에 설명 능력이 없으면 수출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정부 대책에는 2030년까지 청년 뷰티 등 브랜드 창작자 300개사를 발굴하고, 2026년 강한 소상공인 500개 팀을 선발해 수출기업으로 키우는 방안이 담겼다. 온라인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제품을 오프라인 수출상품으로 전환하는 지원, 수출바우처와 수출컨소시엄 연계도 같은 틀에 들어갔다. 창작자와 소상공인을 K-뷰티 수출 산업의 한 축으로 보겠다는 방향이다.
해외 매장에 들어가는 일보다 같은 자리에 계속 남는 일이 더 어렵다. 첫 수출은 지원 사업으로 문턱을 낮출 수 있지만, 현지 소비자의 반복구매와 품질 신뢰는 기업 내부에서 쌓아야 한다. 가격 운영, 표시광고 관리, 현지 규제 대응, 부작용 접수 체계가 약하면 수출 성과는 오래 이어지기 어렵다.
미국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은 시설 등록, 제품 목록 제출, 안전성 입증 문서 보유, 중대한 유해 사례 보고 등을 요구한다. 유럽 시장은 성분 제한과 안전성 평가, 표시 기준이 까다롭다. 해외 진출 브랜드에는 제조력뿐 아니라 문서화, 안전성 자료, 부작용 대응 체계가 필요해졌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본 서류와 내부 관리 체계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인디 브랜드라도 제품은 소비자의 피부에 직접 닿는다. 성분 자료가 부족하거나 표시광고 근거가 약하면 현지 유통망에서 탈락할 수 있다. 안전성 입증과 품질 기록, 책임판매 구조가 갖춰지지 않으면 빠른 성장 자체가 부담이 된다. 제조 분업이 만든 속도는 브랜드의 내부 관리 능력을 더 강하게 요구한다.
김주덕 석좌교수는 정부를 향해서도 기술 주도형 경쟁체제 전환과 전략적 R&D 투자를 강조했다. K-뷰티의 후광 효과에 기대기보다 기초 연구, 피부 과학, 바이오 소재 개발,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는 제언이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 소재 개발과 중장기 효능 검증에 국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함께 제시했다.
인디 브랜드 시대의 경쟁력은 빠른 제품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료 데이터, 효능 근거, 소비자 불만 관리, 현지 규제 검토, 가격 운영, 장기 제품 라인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히트 제품 하나가 브랜드를 알릴 수는 있다. 오래 남는 브랜드는 제품군 전체의 신뢰를 관리한다.
K-뷰티 제조망은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빠르게 바꾸는 힘을 이미 보여줬다. 인디 브랜드 성장도 그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시장에 비슷한 콘셉트와 성분, 패키지가 늘어날수록 속도만으로는 차별성을 만들기 어렵다. 해외 시장에서는 안전성 자료, 표시광고 근거, 현지 규제 대응, 품질 안정성이 브랜드의 지속성을 가른다. 빠른 출시로 열린 K-뷰티 인디 브랜드 시장은 오래 팔릴 제품을 남기는 구조를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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