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방한 선물로 떠오른 호작도, 대중문화가 넓힌 관심이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K팝·드라마 너머로 번지는 한류의 다음 장면, 브라질에서 한국 전통회화의 새 접점이 열리고 있다
[KtN 박준식기자]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민화 특별전은 전시장 안 풍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사다. 문화원과 쇼핑몰을 잇는 전시 형식도 눈에 띄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전시 바깥에 있다. 왜 하필 지금 브라질에서 민화인가 하는 물음이다. 한국 전통회화가 남미 대도시 한복판에 걸린 배경에는 최근 몇 달 사이 겹쳐진 몇 가지 장면이 놓여 있다. 한 장면은 외교의 자리에서 나왔다. 지난 2월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방한 때 한국 정부가 선물 목록에 호작도를 올렸다. 다른 장면은 대중문화에서 나왔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작품 속 호랑이와 까치 도상이 한국 민화의 친숙한 이미지와 연결돼 다시 불렸다. 상파울루 전시는 바로 그 사이에 들어섰다. 외교가 호출한 상징과 대중문화가 끌어올린 관심이 실제 전시장으로 옮겨오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민화는 오랫동안 한국 전통문화 소개의 앞줄에 서 있던 장르는 아니었다. 해외에서 한류를 말할 때 먼저 거론된 것은 대개 음악, 드라마, 영화, 음식, 화장품이었다. 시각예술도 현대미술이나 공예 쪽이 더 빠르게 알려졌다. 민화는 그 뒤편에 있었다. 이미지 자체는 친근하지만, 상징의 결을 읽으려면 설명이 필요하고, 미술사 맥락까지 들어가면 문턱이 높아진다. 그런 장르가 브라질에서 다시 호출되는 배경은 단순한 전시 홍보 문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브라질을 둘러싼 한국 문화 소비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는 징후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한류가 유행 상품을 넘어 한국 문화의 내부 구조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문화가 입구를 열고, 전통예술이 그 뒤를 잇는 방식이다. 상파울루 전시를 한 번의 이벤트로만 보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호작도의 외교적 재등장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23일 국빈 방한한 룰라 대통령에게 전태일 평전 영문판, 한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과 함께 호작도를 선물했다. 호작도가 특히 눈길을 끈 이유는 한국 전통회화가 외교의 장면에서 다시 상징 자산으로 소환됐기 때문이다. 정상 간 선물은 값비싼 물건을 주고받는 절차가 아니라, 상대국이 읽을 수 있는 상징을 고르는 행위에 가깝다. 호작도는 바로 그런 자리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그림 한 장 안에 익살, 길상, 벽사, 민중적 정서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 이미지를 너무 무겁지 않게 전하면서도 한국적 결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다.
호작도가 외교 선물로 적절한 이유는 상징의 결이 비교적 넓기 때문이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호랑이는 권위와 위엄의 대상이면서도 민화 안에서는 우스꽝스럽고 친숙한 존재로 그려진다. 엄정한 권력 상징으로만 서 있지 않고, 익살과 풍자를 품는다. 바로 그 점이 민화를 한국 전통회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자리로 올려놓는다. 궁중회화가 질서와 격식을 전한다면, 민화는 생활과 감정을 전한다. 외교 선물로서 호작도는 지나치게 의전적이지 않으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하다. 상대국 정상에게 건네는 이미지가 지나치게 권위적일 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가벼워서도 안 된다. 호작도는 그 중간을 잡기 좋은 도상이다. 다만 흔히 덧붙는 ‘우정’ ‘평화’ 같은 해석을 하나의 고정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다. 민화의 상징은 늘 복수의 뜻을 품어 왔고, 외교 현장에서는 그 복합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한다.
호작도가 다시 부각된 또 하나의 길목은 대중문화다. 2025년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뒤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고, 작품 안에 등장한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공동연출자 매기 강은 이 동물 캐릭터의 착안점 가운데 하나로 한국 민화 호작도를 언급한 바 있다. 한국 안에서도 전시가 이어지며 영화의 인기에 기대어 까치호랑이와 한국 민화의 뿌리를 연결해 소개하는 흐름이 나왔다. 다시 말해 민화는 박물관 전시실에서만 호명된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 화면을 통해 먼저 대중의 눈에 들어온 뒤 전시장으로 옮겨왔다. 한국 안에서 벌어진 이 흐름이 브라질을 포함한 해외 관객의 관심으로 번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계적 플랫폼에서 먼저 이미지를 익힌 뒤, 실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에서 원형을 찾아가는 방식은 요즘 문화 소비에서 드물지 않은 경로다.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가 민화를 설명하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K팝 데몬 헌터스’는 관심의 입구일 수는 있어도 민화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파울루 전시가 의미를 얻는 대목은 그다음 단계에 있다. 익숙한 캐릭터나 이미지의 원형이 무엇인지, 호랑이와 까치가 왜 함께 그려졌는지, 민화가 어떤 생활 세계에서 태어났는지를 실제 작품과 강연, 워크숍을 통해 다시 보여주는 데 있다. 유행을 전시장 안으로 그대로 끌고 들어오는 데 그쳤다면 일회성 구경거리로 끝났을 것이다. 반대로 유행의 입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작품 감상과 미술사 설명으로 이어 붙인다면 대중문화의 파급력이 전통예술의 진입로가 될 수 있다. 상파울루 전시를 둘러싼 프로그램 구성은 적어도 그 방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이라는 무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브라질은 오랫동안 K팝과 한국 드라마의 큰 소비지였다. 온라인 팬덤과 공연 시장, 한국어 학습 수요가 이미 두텁다. 다만 전통예술까지 같은 속도로 뻗어 나간 것은 아니다. 남미에서 한국 전통회화가 대중적 접점을 얻기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하다. 익숙한 서사가 부족했고, 언어와 설명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 상파울루 전시는 그 벽을 우회하는 대신 정면으로 다뤘다. 쇼핑몰이라는 생활 공간으로 먼저 들어가 시선을 붙잡고, 문화원과 대학 강연으로 맥락을 보충하는 구조를 택했다. 전통예술 소개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낯섦을 지우는 일과 낯섦의 이유를 설명하는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두 과제를 한꺼번에 풀어보려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성공 여부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를 정확히 짚은 기획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민화가 브라질에서 읽히는 방식이다. 한국 안에서 호작도는 벽사와 길상의 상징으로 설명되지만, 해외 관객에게는 먼저 익살스러운 동물 이미지로 다가갈 가능성이 크다. 책가도는 학문과 입신을 품은 그림이지만, 낯선 관람객의 눈에는 기물과 색면의 리듬으로 먼저 읽힐 수 있다. 화조도 역시 장식성과 생동감이 앞서 다가온다. 결국 해외 전시에서 민화가 만나는 첫 관문은 뜻보다 형식이다. 선명한 색, 평면적 구도, 친숙한 동식물, 반복되는 문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 다음에야 상징과 맥락이 뒤따른다. 그래서 민화는 다른 전통회화보다 해외 확장 가능성이 의외로 넓다. 설명이 어려운 그림이면서도, 설명 없이도 일단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파울루 전시가 쇼핑몰 공간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 시각적 힘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경계할 대목도 있다. 민화를 해외에서 소개할 때 가장 쉬운 길은 ‘귀엽고 이국적인 한국 그림’으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호랑이의 익살, 까치의 경쾌함, 화려한 색채만 앞세우면 관람의 문턱은 낮아진다. 대신 민화가 품고 있는 생활사와 상징 체계, 계층적 맥락, 조선 후기 시각문화의 층위는 뒤로 밀린다. 반대로 해설에만 무게를 두면 그림은 갑자기 어려워진다. 상파울루 전시가 넘어야 할 지점도 바로 거기다. 대중문화가 열어 놓은 입구를 이용하되, 민화를 다시 얇은 캐릭터 이미지로 평평하게 만들지 않는 일이다. 전통예술의 해외 확산은 대개 이 긴장 위에서 성패가 갈린다. 쉽게 다가가되 가볍게 끝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전시가 학술 프로그램을 함께 배치한 이유도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유정서 대표와 김민 동덕여대 겸임교수,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가 브라질을 찾아 ESPM대와 USP에서 특별 강연을 진행했고, 문화원 현장에서는 일반 관람객 대상 워크숍도 열었다. 이런 구성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부대행사 수준이 아니다. 전통예술은 관람만으로 끝날 때보다 설명과 체험이 붙을 때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손으로 선을 따라 그려 보거나, 도상의 의미를 직접 듣는 과정이 들어오면 그림은 장식 이미지에서 문화 텍스트로 옮겨간다. 결국 상파울루 전시가 묻는 것은 전통예술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만이 아니다.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이 더 크다. 강연과 워크숍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다.
브라질에서 민화가 다시 보인다는 사실은 한류의 방향이 조금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류 1막이 스타와 서사, 소비재가 이끌었다면, 지금은 그 바깥에 있던 전통과 시각문화가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그렇다고 흐름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민화가 K팝이나 드라마만큼 넓은 대중성을 곧바로 얻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술품 시장이나 제도권 교육 안에서 바로 자리를 굳힐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전통예술을 받아들일 최소한의 문화적 토양이 이미 형성돼 있고, 그 토양 위에서 민화가 새로운 상징 자산으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 외교의 선물, 세계적 흥행작의 캐릭터 모티프, 상파울루 도심 전시, 대학 강연이 하나의 시차를 두고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그 흐름을 보여준다.
한국 안에서도 민화는 오랫동안 주변부 미술로 취급돼 왔다. 궁중회화나 문인화에 비해 늦게 평가받았고, 공예와 장식의 경계에 놓인 그림쯤으로 보는 시선도 남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에서는 바로 그 생활성과 이미지 친화력이 강점이 될 수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동물 도상, 선명한 색감, 상징의 압축, 생활 가까이 놓였던 그림이라는 성격이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더 빨리 닿는다. 상파울루 전시는 그런 민화의 성질을 꽤 정직하게 활용한 사례다. 쇼핑몰과 문화원 사이를 오가게 한 동선, 현지 맞춤형 축구 모티프 작품, 병풍 형식의 대작 공개, 강연과 워크숍 구성까지 모두 민화의 장점을 풀어 헤치는 대신 하나씩 시험해 보는 방식에 가깝다. 주최 측 의도대로라면 이번 전시는 브라질 대중에게 민화를 처음 각인시키는 자리이고,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현장이다.
상파울루 전시를 바라보는 더 현실적인 기준도 필요하다. 전시가 끝난 뒤 무엇이 남느냐다. 관람객 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화가 브라질 안에서 이후 어떤 언어로 다시 불리는지, 문화원 프로그램과 교육 현장으로 이어지는지, 한국 전통회화를 다루는 또 다른 전시와 연구가 뒤따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해외 문화행사는 자주 열리지만, 흔적은 고르게 남지 않는다. 일시적 노출로 끝나면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이번 전시가 의미를 얻으려면 호작도와 까치호랑이가 ‘한번 본 한국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전통예술 전체를 다시 보는 입구가 되어야 한다. 그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럼에도 분명한 장면 하나는 남았다. 룰라 대통령의 손에 들린 호작도와 넷플릭스 화면 속 까치호랑이, 그리고 상파울루 도심 전시장에 걸린 민화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사실을 말한다. 한국 전통회화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의 언어로도 읽히고, 대중문화의 이미지로도 유통되며, 도시 전시의 형식 안에서도 새 관객을 만난다. 상파울루 전시는 그 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다음 단계를 시험하는 자리다. 한류의 외연이 넓어졌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넓어진 자리에 무엇을 올릴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지금 브라질에서 민화가 다시 보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 문화의 바깥쪽에 머물던 오래된 그림이 비로소 오늘의 문맥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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